어른을 위한 힐링 동화 ‘어린 왕자’
미디어 아트, 어린 왕자를 살게 하다: <나의 어린 왕자에게> 展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1943년 출간 이후, 180여 개 국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스테디셀러 동화 ‘어린 왕자’. 어렸을 때 읽었던 것보다 어른이 되어서 읽었을 때 더 큰 공감과 감동을 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유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야” 등 많은 명대사를 남기며 어른이 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고민하고 맞닥뜨리는 ‘사람’과 ‘관계’,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때 묻지 않은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순된, 꿈을 잃어버린 듯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 꿈을 되돌아보게 하는 동화이기도 하다. K현대미술관은 동화 ‘어린 왕자’의 장면, 대사들을 미술적으로 재해석하고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통해 시각화하는 <나의 어린 왕자에게> 展을 개최했다. 국내외 작가 20여 명이 참여한 <나의 어린 왕자에게> 展에서는 회화와 영상설치, 비디오게임 등 다채로운 표현을 통해 ‘어린 왕자’에 대한 색다른 시각과 해석을 경험할 수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권위적이고 지배욕으로 가득한 왕,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애타게 바라는 허영쟁이, 술에 취한 주정뱅이, 계산과 소유에 집착하는 사업가, 시간에 쫓겨 쉬지 못하는 점등인, 확인되지 않은 남의 이야기로 책을 쓰는 지리학자. 여섯 개의 행성을 지나며 이상한 어른들을 만나온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해 겪는 여정을 다루고 있는 동화 ‘어린 왕자’. 그리고 이 특별한 동화를 모티브로 한 <나의 어린 왕자에게> 展의 부제는 [Geo+Visual+Scape]이다. 현대미술(Visual)을 통해 동화 저편의 풍경(Scape)을 우리가 자리한 현실(Geo)로 가져오며, 이로써 동화 ‘어린 왕자’를 세상 속에 살아 숨 쉬게 만든다는 의미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동화 속에서 누누이 강조되는 두 주제,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과 ‘길들인다는 것’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내놓는다. 관람객들은 미디어아트를 통해 구현된 어린 왕자의 여정을따라가며 단순히 동화책을 읽는 간접적인 경험이 아닌, 직접 동화 속을 거니는 듯한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는 5층에서 4층으로 이어진다. 5층에서는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조종사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하고,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된다. ‘어른들의 삶’에 익숙해져 있던 조종사는 어린 왕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돌이켜 보게 된다. 전시는 Jack Turpin과 Yuehao Jiang의 작품으로 시작된다.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시뮬레이션 영상과 어린 왕자의 유명한 에피소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여러 섹션으로 나뉜 전시장을 둘러보면 ‘양 한 마리만 그려줘요.’라는 어린 왕자의 말에서 모티브를 얻어 관람객이 양을 그리며 직접 조종사가 되어보는 체험 존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비디오 게임, 볼트와 너트를 활용한 입체 작품, 모션 페인팅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였던 과거를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되돌아보고,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 꿈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다.
K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층별로 미장센을 제작해 전시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5층의 네온 미장센은 Jason Rhoades가 展에서 선보인 네온 작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네온 미장센은 어린 왕자가 여정 중에 경험한 감정과 관계에 관한 단어들로 이루어지며, 철새 대신 단어를 쥐고 날아다니는 어린 왕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네온 미장센 옆으로는 YALOO 작가의 비디오와 설치 작업이 있다. 어린 왕자의 순수한 마음과 그가 살았던 행성 B612의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그러나 ‘하트’ 모양의 작품은 동화 ‘어린 왕자’ 속에서 다룬 다양한 이야기처럼 때론 절망적이고 때론 안타까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구지은 작가의 작품은 ‘어린 왕자’ 속 등장하는 허영쟁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스스로 부풀리며 정서적인 포만감을 얻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풍선껌을 오브제로 선택했으며, 사람들이 씹고 버린 볼품없는 껌을 모아 샹들리에로 구성했다. 작품 <꿈꾸는 풍선껌>은 실속 없는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허영쟁이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흔히 SNS나 자랑 등을 통해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의 어른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4층에서는 본격적인 어린 왕자의 여행이 시작된다. 철새 무리로 행성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어린 왕자는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다. 4층에서는 어린 왕자와 함께 걸으며, 혹은 직접 어린 왕자가 되어서 그가 겪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함께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4층 전시 공간은 평온하면서도 이질적인, 분홍빛의 향연으로 시작된다. ‘나’의 그림자를 그대로 비추는 스크린과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빛 속에서 주변 모든 게 변해도 ‘나’라는 주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다음은 Adem Elahel 작가의 작품으로 일몰을 44번이나 봤다는 어린 왕자의 말에서 착안했다. 3D 프린터로 출력된 설치물 위로 인위적인 일출과 일몰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어린 왕자의 주제와도 이어진다.
4층의 미장센은 구획 미장센으로 <2006 멕시코비엔날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구획 미장센은 빈자리 없이 모든 땅을 단절하고 나누려는 사람들의 경향을 풍자했다. <2006 멕시코비엔날레>에서 노란 안전선으로 정해진 일정한 크기의 구획 안에 작품들을 전시했듯, 이번 전시에서는 서로 다른 인간 군상이 양립하는 ‘어린 왕자’ 속 지구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구획 미장센에 전시된 작품은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지 못하고 수용해버리는 정보화 시대의 허점을 다룬 이주원 작가의 작품,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자체도 정형화된 것이라 생각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보아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윤여준 작가의 작품 등 ‘틀에 박히지 않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했다.
"All grown-up were once children, although few of them remember it."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없다.
‘어른이지만 아이인 자신의 별을 찾는 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동화 ‘어린 왕자’를 다룬 <나의 어린 왕자에게> 展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전시다. 동화를 시각적이고 감각적으로 해석했다는 점, 미디어아트라는 가장 현대적인 미술 매체를 통해 동화 속 어린 왕자에게 역동성과 온기를 부여했다는 데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 다시 한 번 ‘어린 왕자’를 읽고 공감하며 나 자신, 내 주변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이 전시를 본 후, 현대 사회에 맞춰 변해가는 나 그리고 내 곁에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의미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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